말씀 나누기

반전의 메시아

상일샘2025.02.17 15:00조회 수 22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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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범위 누가복음(Luke)4:14 - 4:30

14○예수께서 성령의 능력을 입고 갈릴리로 돌아오셨다. 예수의 소문이 사방의 온 지역에 두루 퍼졌다.
15그는 유대 사람의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셨으며, 모든 사람에게서 영광을 받으셨다.
16○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나신 나사렛에 오셔서, 늘 하시던 대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는 성경을 읽으려고 일어서서
17예언자 이사야의 두루마리를 건네 받아서, 그것을 펴시어, 이런 말씀이 있는 데를 찾으셨다.
18주님의 영이 내게 내리셨다. 주님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셔서, 가난한 사람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게 하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셔서, 포로 된 사람들에게해방을 선포하고, 눈먼 사람들에게 눈 뜸을 선포하고,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 주고,
19주님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드는 사람에게 되돌려주시고, 앉으셨다. 회당에 있는 모든 사람의 눈은 예수께로 쏠렸다.
21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서 오늘 이루어졌다."
22사람들은 모두 감탄하고, 그의 입에서 나오는 그 은혜로운 말씀에 놀라서 "이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23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틀림없이 '의사야, 네 병이나 고쳐라' 하는 속담을 내게다 끌어대면서, '우리가 들은 대로 당신이 가버나움에서 했다는 모든 일을, 여기 당신의 고향에서도 해보시오' 하고 말하려고 한다."
24예수께서 또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아무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
25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엘리야 시대에 삼 년 육 개월 동안 하늘이 닫혀서 온 땅에 기근이 심했을 때에, 이스라엘에 과부들이 많이 있었지만,
26하나님이 엘리야를 그 많은 과부 가운데서 다른 아무에게도 보내지 않으시고, 오직 시돈에 있는 사렙다 마을의 한 과부에게만 보내셨다.
27또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이스라엘에 나병환자가 많이 있었지만, 그들 가운데서 아무도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시리아 사람 나아만만이 고침을 받았다."
28회당에 모인 사람들은 이 말씀을 듣고서, 모두 화가 잔뜩 났다.
29그래서 그들은 들고일어나 예수를 동네 밖으로 내쫓았다. 그들의 동네가 산 위에 있으므로, 그들은 예수를 산 벼랑까지 끌고 가서, 거기에서 밀쳐 떨어뜨리려고 하였다.
30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한가운데를 지나서 떠나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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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 2025.2.17 09:54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셨다. 우리의 죄와 죽음에서 건지기 위하여 친히 이땅에 인간이 되셔서 오셨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는 다른 모습이였다. 아마 유대인들이 원하던 메시아는 로마의 핍박과 고난속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줄수 있는, 원수인 나라들을 심판하러 온 능력자였다. 예수님은 당시에 누구에게서 환영을 받지 못하셨다. 전에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이땅에 오신 것은 죄와 죽음이라는 드럽고 좋지 않은 것들 속으로 들어와 구원하신것, 그 누구도 깨끗하지 않은 곳에, 드럽고 냄새나는 곳을 직접 찾아서 살아갈수 없다. 라는 주일말씀이 생각났다. 우리는 자주 예수님의 그 크신 사랑과 은혜를 잊고 지내는 날이 많은 것 같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사랑을 보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그 주님을 제 마음속과 삶속에 깊이 새기게 해주시고, 예수님을 자신이 생각하는 메시아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 세상속에서 그 참되신 메시아, 반전의 메시아를 전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2025.2.17 09:54

    복음은 가난한 자에게 기쁜 소식이고 포로된 자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는 말씀이고 눈먼 자들의 눈을 뜨게 하는 말씀이다. 모든 문제와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는 정답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계속 까먹고 어쩌면 의심하지만 하나님의 말씀 안에는 정답이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말씀을 사모하는 사람들이다. 사실 너무 말씀을 의무적으로 읽게 된다. 내가 정말 말씀을 원해서, 말씀 속에서 위로와 힘을 얻고 싶어서가 아니라 읽게 되더라도 너무 오래 안읽은 것 같아서, 그냥 적당히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을 지키기 위하여 행위적으로만 읽는 모습들이 있다. 경건한 일들을 향한 열심과 그 시간을 아까워하지 않고 기쁨과 감사로 드릴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 있기를 소망한다. 하나님 말씀을 정말 열심히 읽고 묵상하여 마음속에 새기기를 원하는 그 마음을 저에게 주세요. 그래서 기쁠때나 슬플때나 말씀 속에서 힘과 위로를 얻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2025.2.17 09:55

    하나님 말씀을 전하다 보면 두려운 일들이 생긴다. 전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그 말씀을 믿고 살아가기만 해도 오늘 말씀처럼 사람들의 눈빛이 달라지고 분노할 때가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싫어하는 이유는 자기 뜻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들이 생각하던 메시아와 예수님이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번쩍인 등장이 아니라 마구간, 말 구유에서의 등장이고 우리에게는 구원만을 이방인들에게는 심판만을 주시는 메시아가 아니라 모두에게 구원을 주고 싶어하시는 메시아는 자기가 생각하는 메시아와는 정말 달랐기 때문이다. 결국 그들이 생각하는 나의 틀과 내 생각, 뜻 안에서 움직여야 하는 메시아가 그들이 원했던 메시아이다. 하지만 예수님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기에 분노했고 묵상 책에서는 나오지 않은 29~30절을 보면 내쫓기까지 하려고 했다고 나온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냥 가던 길을 가신다.

    예수님, 주님의 자녀로 살다 보면 생기는 여러 세상 사람들의 분노와 유혹들이 있습니다. 그것들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그것들에 빠질 것만 같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담대함과 용기를 허락해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에 반발하는 세상을 무시하고 당당하게, 오히려 더욱더 열심히 나아가는 제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2025.2.17 09:56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는 자는 당연하게 예수님의 말씀에 감사하며, 예수님께 영광은 돌리는 모습을 보여야 했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들의 반응은 예수님을 죽이려는 것이었다. 그들이 말씀을 듣는 태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이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하신 것 같다.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반응, 그 말씀을 진짜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을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일하심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 우리가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말씀에 반응하게 하신다. 하나님, 말씀을 듣는 저의 마음을 만져 주셔서 말씀이 깨달아지게 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말씀, 경고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제가 될 수 있게 해주세요.

  • 2025.2.17 09:59

    본문의 마지막 절을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은 화가 나 있다. 솔직히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위기의 순간들에 자신들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얘기를 누가 기쁘게 들을 수 있을까. 그러나 예수님이 하시고자 하는 말씀의 중점은 이게 아니다. 예수님은 믿음에 관하여 말씀하시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 민족들이 구원받지 못했다는 얘기에만 집중하며 화를 낸다. 이와 비슷하지만 다른 나의 얘기를 해 보자면, 나는 요즘 많은 일들을 통해 지금 이 시대가 마지막 시대임을 깨닫고 있다. 그러나 나는 억지로 잊어서라도 재림의 예표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지금 나의 죄로 인해 재림이 너무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나의 죄로 인해, 이 세상의 것을 더 즐기기 위해 지금 나는 재림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깨달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이제 깨달았으니 주께 나아가 회개하고 재림을 기대하는 삶을 살고 싶다.

  • 2025.2.17 09:59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자신들의 이방 나라들을 심판하고, 자신들에게만 구원을 베풀어줄 존재로 기대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기대와는 다르게 메시아, 예수님께서는 사랑을 베푸시며 우리를 구원하신다. 당시 유대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는 사랑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 그러나 인간의 시선으로 봤을 때 저들이 기대했던 메시아가 더 우리에게 더 좋은 이익을 줄 것 같고, 더 능력 있어 보인다. 여기서 내가 생각하고, 깨닫게 된 것은 첫 번째로 메시아는 우리에게 어떠한 이익을 가져다 주는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고 또 두 번째로는 사랑이 가장 큰 능력이라는 사실이다. 나에게 세상에 것이 너무나 커 보이고 더 능력 있어 보일 때마다 그 세상보다 큰 능력으로 나를 구원하여 주신 나의 구주 예수님을 바라볼 수 있는 내가 되었음 좋겠다. 하나님 제가 세상 어떤 능력보다 예수님의 그 십자가에 사랑이 가장 큰 능력임을 믿으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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