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구원 받은 부자

상일샘2025.04.04 13:00조회 수 20댓글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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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범위 누가복음(Luke)19:1 - 19:10

1예수께서 여리고에 들어가 지나가고 계셨다.
2삭개오라고 하는 사람이 거기에 있었다. 그는 세관장이고, 부자였다.
3삭개오는 예수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려고 애썼으나, 무리에게 가려서, 예수를 볼 수 없었다. 그가 키가 작기 때문이었다.
4그래서 그는 예수를 보려고 앞서 달려가서, 뽕나무에 올라갔다. 예수께서 거기를 지나가실 것이기 때문이었다.
5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러서 쳐다보시고, 그에게 말씀하셨다. "삭개오야, 어서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서 묵어야 하겠다."
6그러자 삭개오는 얼른 내려와서, 기뻐하면서 예수를 모셔 들였다.
7그런데 사람들이 이것을 보고서, 모두 수군거리며 말하였다. "그가 죄인의 집에 묵으려고 들어갔다."
8삭개오가 일어서서 주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겠습니다. 또 내가 누구에게서 강제로 빼앗은 것이 있으면, 네배로 하여 갚아 주겠습니다."
9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10인자는 잃은 것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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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7
  • 2025.4.4 09:40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삭개오의 집을 방문하고자 하셨고, 삭개오는 이 은혜 반응하였습니다. 죄사함과 화목을 제공하시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주권으로 전개된 것입니다. 인자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셨다는 것은, 삭개오가 은혜를 구한 것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삭개오가 아무 자격도 없고, 심지어 그 은혜를 받을 소망조차 갖지 않았을 때 놀라움으로 그에게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사함을 제공하는 일에 주권을 가지시지만, 회개 없이는 구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사함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는 행동이 요구된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것 같고, 삭개오는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으로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돌이켜 회개하며, 실천하는 믿음입니다.

    작은 자, 소외된 자였던 삭개오를 찾아와 주셨던 것처럼, 저희를 찾아와 주시어 주님의 자녀 삼아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께서 그를 바라보시고, 이름을 불러주시고, 그의 집에 거하여 주셨을 때, 그는 주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던 것처럼 날마다 저를 새롭게 만들어 주시는 주님께서 계시기에, 단 하루도 주님의 자녀로 부끄러움 없이 살아갈 수 있음을 고백합니다. 주님의 그 사랑에 힘입어 날마다 나아가는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 2025.4.4 09:43

    예수님의 사역들 가운데, 신약성경 통틀어 구원받은 부자는 오늘 말씀에 삭개오말고는 없는 것 같다. 전에 부자청년도 예수님께 왔었다. 그와 삭개오의 공통점은 부자라는 것이고 차이점은 삭개오는 자신의 재산의 마음을 두지 않았고, 부자청년은 자신의 재산에 마음을 두어 나눠주는 것에 부담감을 가졌다. 다른 말로 하면 부자청년은 이 땅에서 보물쌓는것에 큰 마음을 두었고, 삭개오는 이 땅에서의 보물을 많이 쌓았지만 그것에 큰 마음을 두지 않고 하늘의 보물을 쌓는 것에 마음과 소망을 두었다고 할수 있을 것 같다. 나는 삭개오인가 부자청년인가 돌아보면 부자청년에 가까운 것같다. 말씀을 통해 삭개오처럼 이땅에 소망두지 않고 장차오실 하나님의 나라에 소망을 두며 보물을 쌓아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삶을 살아가다보면 부자청년일때가 많은 것 같다.

    주님 저의 삶을 회개합니다. 묵상할때는 이 땅의 재산과 모든 보물에 소망두지 않겠다고 다짐하지만 삶으로 돌아가면 바로 쓰러지고 실패하는 저의 모습을 돌아봅니다. 주님 제가 곧 오실 하나님 나라의 마음을 두며 그곳에 보물을 쌓기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2025.4.4 09:44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아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으시다. 예수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는데도 삭개오를 부르셨는지 의문이 들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삭개오를 택하셨기 때문이다. 이것이 아니면 삭개오 뿐만이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이유 또한 없어진다. 하나님 주권에 구원이다. 나는 계속해서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부르신 다음 그가 이웃을 사랑하겠다는 말을 구원의 이유로 생각했던 것을 알게 되었다. 삭개오의 행함이 아니라, 그가 선택 받은 자이기에, 잃어버린 자이기에 주님께서는 그를 부르신 것이다. 하나님, 구원이 저의 손에 달려있지 않음을 고백합니다. 주님, 나의 행위로도 나를 구원할 수 있고 생각하던 저를 용서하여 주세요. 제가 하나님 주권의 구원을 인정하며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감사하며, 구원을 누리며 살아가는 자가 될 수 있게 은혜를 더하여 주세요.

  • 2025.4.4 09:45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불과 며칠 전에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고, 즉 부자가 천국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인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바로 삭개오를 구원하셨다. 주님의 주권을 인정하게 되는 부분이다. 우리 주님의 계획은 내가 다 이해할 수 없이 크고 놀라우며 우리 주님의 사랑은 구원하지 못할 이가 없는, 불가능도 가능케 하시는 능력이 있음을 보게 된다. 예수님 나를 구원하신 주님의 사랑에 감사합니다. 작정은 주님께 속했고 나에게는 사랑이 명령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이웃의 구원을 위해 끝까지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2025.4.4 09:48

    말씀을 읽으면서 삭개오의 모습이 부자연스럽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삭개오는 예수님을 보려고 나무에 올랐고 주님은 그런 삭개오의 집에 가서 유숙하셨다. 그런데 갑자기 혼자 일어나서 자기 소유의 절반을 나누고 불의한 일에 대해 책임지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장 이상했던 건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성경이 이 순간의 모든 내용을 담고 있진 않았겠지만 예수님이 삭개오의 앞에서 무언가 큰 이적을 행하시진 않았던 거 같다. 그렇다면 삭개오에게 어떻게 구원이 임할 수 있었을까? 하나님이 그의 마음속에서 일하신 것이다. 제자들도, 주위의 사람들도 그 누구도 7~8절의 결심을 하라 강요하지 않았다. 다만 오직 주님의 일하심으로 인해 그는 변화될 수 있었다. 오늘 본문이 알려주고 싶었던 건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이 하신다는 것인 거 같다.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신다. 우린 그저 그런 주님을 믿고 순종함으로 그 길을 계속 따라가면 된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주님, 주님의 일은 주님이 하십니다. 주님은 그렇게 계속해서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실패하지 않으시는 주님을 보며 제가 주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2025.4.4 09:49

    주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재물에 관해 말씀하시고 계신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이 재물이 의미하는 것과 이 재물과 관련된 이야기로 우리에게 더 깊은 메시지를 주시려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웃에게 자신의 재물을 나눠주며 이웃을 섬기고 재물을 포기하여 재물을 의지하지 않고 주님을 의지한다. 이렇게 재물을 포기한 다는 것은 낮아짐의 마음인 것 같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는 이 재물에 대한 낮아짐의 고백은 구원으로까지 이어진다. 이 세상에 재물을 향한 나의 마음을 돌아보며 재물보다 그 낮아짐의 자리를 내가 바랄 수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 재물을 향한 저의 마음이 욕심이라면 저의 마음을 꺾어 주시기를 구합니다. 저를 낮아짐에 자리에 세워 주세요.

  • 2025.4.4 09:52

    신앙생활을 할때 우리가 자주 넘어지는 구덩이가 있다. 그 구덩이는 바로 '내가 주님을 찾아간 줄 아는 것이다.' 자신이 자신의 힘으로 예수님을 찾아가 구원을 받은 것처럼 생각할 때가 있는 것 같다. 몰론 생각으로는 그것이 아닌 것을 잘 알지만 그냥 살다보면 무의식중에 그 구덩이에, 함정에 빠진 나를 마주하게 된다. 항상 기억하고 조심해야 할 것은 나의 구원은 나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늘 말씀처럼 사람들에게 눈치받고 비난받던 삭개오와 같은 우리에게 내가 찾은 것이 아닌, 예수님이 찾아와주신 것이고 사랑해주신 것이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과 말로만 이해하면 다일까? 아니다. 말씀의 나온 삭개오처럼 삶까지 옮기는 모습이 우리 가운데 있어야 한다. 하나님, 주님이 나를 찾아와 주셨음을 기억하는 제가 되도록 도와주시고 그 마음이 삶의 실천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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