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진노의 매

상일샘2024.10.21 11:00조회 수 29댓글 4

    • 글자 크기
본문 범위 예레미야애가 3장 1-18절

1나는 하나님의 진노의 몽둥이에 얻어맞고, 고난당하는 자다.
2주님께서 나를 이끄시어, 빛도 없는 캄캄한 곳에서 헤매게 하시고,
3온종일 손을 들어서 치고 또 치시는구나.
4주님께서 내 살갗을 약하게 하시며, 내 뼈를 꺾으시며,
5가난과 고생으로 나를 에우시며,
6죽은 지 오래 된 사람처럼 흑암 속에서 살게 하신다.
7내가 도망갈 수 없도록 담을 쌓아 가두시고, 무거운 족쇄를 채우시며,
8살려 달라고 소리를 높여 부르짖어도 내 기도를 듣지 않으시며,
9다듬은 돌로 담을 쌓아서 내 앞길을 가로막아, 길을 가는 나를 괴롭히신다.
10주님께서는, 엎드려서 나를 노리는 곰과 같고, 몰래 숨어서 나를 노리는 사자와 같으시다.
11길을 잘못 들게 하시며, 내 몸을 찢으시며, 나를 외롭게 하신다.
12주님께서 나를 과녁으로 삼아서, 활을 당기신다.
13주님께서 화살통에서 뽑은 화살로 내 심장을 뚫으시니,
14내 백성이 모두 나를 조롱하고, 온종일 놀려댄다.
15쓸개즙으로 나를 배불리시고, 쓴 쑥으로 내 배를 채우신다.
16돌로 내 이를 바수시고, 나의 얼굴을 땅에 비비신다.
17내게서 평안을 빼앗으시니, 나는 행복을 잊고 말았다.
18나오느니 탄식뿐이다. 이제 내게서는 찬란함도 사라지고,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 글자 크기
부르짖어라 (by 상일샘) 잠잠히 기다리라 (by 상일샘)

댓글 달기

댓글 4
  • 2024.10.21 07:36

    오늘 말씀의 예레미야는 기도하는 바른 방법을 가르쳐준다. 기도는 그냥 듣기 좋은 말들을 하는 시간이 아니다. 나의 마음에 있지도 않는 말이면서 그냥 말로만 하는 것은 사람의 눈을 의식하는 기도가 될 수 밖에 없다. 정말 주님 앞에서 기도하는 사람은 주님을 향한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주님께 불평이 생기면 불평이 생기는 대로, 이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다면 그 마음 그대로 주님 앞에 가지고 나아가 정직하게 고백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오늘 말씀의 예레미야처럼 외롭다고, 괴롭다고,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져버린 것처럼 절망스럽다고 그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갈 때 우리 주님을 결코 무시하시거나 등지실 분이 아니고 안아주시고 위로하시며 힘주실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 마음에 있는 바를 솔직하게 주님 앞에 가져가는 저의 기도가 되게 해주셔서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며 말만 화려한 기도가 아니라 주님과 깊이 교제하고 그 안에서 힘과 위로를 얻는 기도들이 저의 삶에 있게 해주세요.

  • 2024.10.21 09:40

    왜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가 아파할까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은 이스라엘이고 끝까지 말씀을 전했던 예레미야는 보호하실텐데 왜 오늘 예레미야가 마치 자신이 그 심판을 모두 받아내는 것처럼 나올까? 내 생각에는 지금 이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의 대변인 역할을 해주는 것 같다. 그의 마음은 내가 그렇게 끝까지 전했는데 안 들어서 이렇게 됬다고 꼴좋아하는 마음이 아닌 것 같다. 예레미야는 자신의 이 나라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나라인데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정말 처참하게 끝나버리는 이 상황이 우리는 그냥 익숙해서 쉽게 생각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고 비참한 상황이다. 마치 지금 예레미야의 행동은 신약의 예수님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끝까지 부르셨지만 우리는 듣지 않았고 결국 심판을 받아야 하는데 예수님은 그것을 대신 받으셨고 우리를 진심으로 사랑하셨고 끝까지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결국 예레미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회복시키신다.

    하나님, 예수님의 사랑을 오늘 말씀을 통하여 봤습니다. 정말 끝까지 지금까지도 예수님과 아무 상관 없는 죄인을 사랑하셔서 기도하고 계셔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도 예수님을 따라 기도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 2024.10.21 09:50

    묵상을 하면서 뜬금없긴 하지만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이 떠올랐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죄값을 치르시기 위하여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시셨고 죽으셨다. 오늘 말씀을 읽으면서 듣고 읽기만 해도 무서운 말씀이다. 죄에 대한 형벌을 받아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셔서 하나님의 진노와 십자가의 저주의 죽음을 받으셨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전에 상황과 기분을 다 표현할 수 없지만 오늘 말씀에 감정이었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오직 의지할 분 되시는 하나님조차 진노하시기에 너무나 두렵고 떨릴 수 밖에 없는 것 같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를 사랑하셔서 죽으신 예수님과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기억하는 시간이었다. 또한 오늘 말씀 18절에 마지막에서 '주님께 두었던 마지막 희망마저 사라졌다' 이 말이 너무나 두렵고 무섭게 다가왔다. 계속 말씀을 배우면서 하나님의 크심을 배우고 하나님이 우리의 피난처 되시고, 우리 안에 거하신다 라는 이 말을 자주 들었다. 오늘 말씀처럼 다른 것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희망조차 사라진다면 두려울 것 같다. 이 상황에 예레미야의 심정이 나에게 좀 크게 다가왔다.

    주님, 오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금 깨닫는 시간을 허락하여 주심에 감사합니다. 유일한 희망과 소망이 되시는 주님께 오늘 하루도 제 삶을 맡겨드리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 2024.10.21 09:56

    예레미야는 계속해서 백성들에게 공감한다. 백성들의 고통을 같이 아파하고 그들을 대신해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해 기도한다. 나는 예레미야의 이런 모습이 그의 은사이며 은혜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같은 민족이라지만 그들이 받는 고통을 자기 고통으로 생각하고, 남의 일을 자기 일로 생각해 기도하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솔직히 말하면 예레미야와 애가를 읽으면서 그냥 아무 신경 안 쓰고 살면 안 되는 건지 계속해서 의문이 들었고, 이렇게 사는 게 더 마음 편할 거 같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늘 다시금 알게 된 것은 예레미야가 오늘 보여준 이 모습이 사랑하는 모습이라는 것이다. 내 일이 아니고 내가 신경 쓰며 살지 않아도 되지만 그들과 같이 아파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삶이 바로 사랑하는 삶이고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사는 삶이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저는 항상 예레미야의 삶이 이해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비로써 그 이유가 사랑임을 알았습니다. 주께서 저를 위해 이렇게 살아 주심을 감사하며, 저 또한 주님을 따라 이웃을 향해 사랑하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첨부 (0)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