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 제사장의 옷 만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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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내용 | 제사장의 옷 만들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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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옷, 의복에 대해 생각을 하다보니까 떠오르는 다른 말씀이 있었다.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던 창세기 4장 21절 말씀이었다. 그래서 두 본문을 같이 묵상해보았다. 제사장의 옷을 따로 만들었던 이유는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거룩한 자이므로, 다른 사람들과는 구별된 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가죽옷을 입히신 이유에 구별이 있었을까'에 대해 고민해보았다. 사실 구별하기 위해 가죽옷을 만들어주셨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단지 타락으로 인해 깨닫게 된 인간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주셨다고 생각했었다. 그래도 '타락했음에도 불구하고 은혜언약이라는 크신 계획을 준비하시고 시작하시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를 죄로부터 구별하시는 하나님께서 가죽옷을 만들어주신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하나님 저를 죄로부터 구별하실 수 있으신 분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이심을 믿고 의지합니다.
1. 오늘 말씀에서 우리는 제사장의 옷에 있는 색이 다른 식들과 보석들을 보면서 화려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화려한 옷을 입고 사람들 앞에 서는 것은 굉장한 위험이 있다. 그 위험은 잘 있듯이 화려함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누구보다 하나님이 더 잘 아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제사장의 옷을 화려하게 만드셨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역할인 제사장의 옷을 통해 하나님의 아름다우심과 거룩하심을 보시길 원하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마지막 대제사장은 예수님이시다. 우리는 다른 사람이 보기에 비참했던 예수님의 죽음을 보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의 영광을 볼 수 있어야 한다.
2. 나는 제사장과 같이 다른 사람들 앞에 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기에 화려함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잘 알고 있다. 내가 화려함에 집중하면 고르는 찬양, 곡의 순서, 어떻게 반복할지, 박자, 분위기들이 전부 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데에 집중된다. 결국에 이 화려함에 집중하는 노력은 쉽게 나의 노래에 감동하지 않고 열정없어 보이는 사람들을 보며 내 역할에 싫증을 느끼고 하기 싫은 마음이 들게 된다.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기 위해 인도를 하다보면 인도가 끝난 후에 기분이 매번 다르다. 마치 내가 해야할 일을 하나 해결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가 해야할 것은 그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임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찬양 인도할 때 만큼은 적응이 잘 안 된다. 지금의 나는 화려함의 위험이 많이 줄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아직도 그 위협을 항상 느끼고 있다.
대제사장은 그 역할로서 옷이 구별된다. 제사장들이 구별되게 화려한 옷을 입는다면 자기의 역할과 겉모습으로 자만하게 되지 않을 까 , 제사장의 모습을 보고 부러워하는 백성들은 없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어떤 마음으로 구별되었는가 인것같다.
그런 구별되어있는 역할로써 더 마음에 신경써야 하는 것 같다.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로써 거룩으로 구별된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모세는 제사장과 대제사장의 예복 모두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들었다. 모세가 보여준 모습은 순종이다.
순종은 주님께서 예물보다 기뻐하시고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까? 아마 그동안 나는 순종보다는 예물을 더 중요시 여긴 것 같다.
주님 제가 예물보다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중요시 여기고 주님께 순종하는 자가 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대제사장의 옷이 화려한 이유를 생각하면서 거룩한 대상은 아름답다는 설교가 또 생각이 났고 ,그래서 '그 아름다움으로 거룩함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을 하다가 '그럼 예수님이 화려한 겉모습을 하지 않고 다니신 건 그 아름다움의 궁극적 의미가 외양적 모습이 아니라 내면의 거룩함에 있다는 것을 표현하신 것인가'라는 생각도 하게 됐다. 외양의 아름다움이 점점 그 사람의 판단의 주를 이루게 되는 세상의 흐름에서 그리스도인인 나는 더더욱 사람의 내면의 거룩함에 집중할 수 있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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