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내용 | 선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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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택한다는 것의 무게와 중요성을 배워야 하는 또 배우고 있는 시기를 보내고 있는 것 같다. 물론 평생에 걸쳐 더 많은 중요한 선택과 결정들을 하겠지만 특히 요즘 사소해 보이는 작은 선택들이 나에게 미치게 될 영향과 결과를 많이 생각하게 되고 의식하게 되는 것 같다. 솔직히 지금 나는 알고 있지만 모르는 척 하는 상태인 것 같다. 내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하고 행동해야 할지 배웠고 알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을 기쁨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같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기뻐하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현실적으로 눈 앞에 보이는 일들을 통하여 나의 명예와 부를 쌓으려는 어리석은 자가 아니라 내가 다 이해할 수 없더라도 주님의 백성을 입히시고 먹이시며 채우시는 주님이심을 믿고 의지하는 자가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하나님 여러가지를 선택하고 결정하는 부분에 있어서 그 기준이 오직 주님의 영광이 되게 해주시고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삶을 가장 가치 있는 삶으로 여기며 감사와 기쁨으로 살게 해주세요.
5 유다는 은화를 성전 안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유다는 오늘 말씀에서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자살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내가 묵상했던 것은 가룟 유다와 베드로이다. 우선 둘 다 예수님을 부인했다. 근데 배신하고 그 다음에 베드로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고 회개했지만 가룟 유다는 자신의 연약함을 고백하지 못하고 죽음을 택했다. 여기서 더 들어가서 생각해보면 베드로처럼 자신의 연약함을 주님께 고백하고 회개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모습이지만 가룟 유다처럼 나의 연약함을 이정하지 못해서 죽거나 자살하는 그런 면에서는 세상 사람들에 모습인 것 같다. 우리는, 또는 그리스도인들은 계속해서 높아질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낮아지려고 하기에 자신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연약함을 주님께 고백하게 된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중에 대다수는 자신을 높이려고 하는 생각으로 인해 나의 연약한 점, 다른 사람과 비교했을 때 좀 부족한 점을 숨기기 위해 여러 수단을 이용하고 그 연약함과 부족함을 주님께 고백함으로써 주님께 그 부족한 점과 연약한 점을 채워달라고 하는 것이 아닌 그것을 세상의 여러 수단과 방법을 이용해 연약함과 부족함을 고치고 없애려고 하는 것 같다. 나의 삶을 연관시켜볼때에 먼저 나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나서 부모님과 같이 교회를 다니고는 있지만 '내가 주님을 부인했구나, 라는 생각이 든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나의 연약함을 고백하는가?' 나도 세상사람들처럼 자꾸만 나의 연약함을 숨기고 내가 잘하는 것만을 드러내는 것 같다. 정말 생각해보면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기 싫고 나의 약점과 연약한 점들을 다른 사람과 자꾸 비교해서 '다른 사람이 나의 어떤 약한 점, 연약한 점을 잘하네..'라는 식으로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 같다. 나는 유다와 베드로를 묵상하면서 주님을 부인했지만 그 연약함을 고백하는 베드로를 본받고 내가 연약하고 약해서 주님을 언젠가 부인할 수 있지만 부인함으로 좌절감에 유다처럼 죄책감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자가 되길 기도하는 자가 되어야겠다.
하나님 저의 연약함을 고백합니다. 저의 삶을 돌아보면 언제라도 주님을 부인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부인해서 죄책감을 가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제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수 있는 자가 되게 해주세요.
'유다는 은화를 성전 안에 내던지고 나가서 목매어 자살했습니다.' 유다는 자신이 한 일 곧, 예수님을 팔아 넘긴 일에 대한 죄책감으로 인해 자살한다. 이 본문에 대한 말씀을 들은 적이 있다.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와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가 죄책감을 가진 뒤 한 일에 대해 비교하며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며 하나님께 회개했고, 유다는 오늘 말씀에 나온 것처럼 자살했다. 세상 사람들이 봤을 때 베드로는 겁쟁이이고 오히려 자신의 잘못에 자신이 책임진 것처럼 보이는 유다가 더 위대하고 멋있어 보이는 사람 일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지 않다. 성경적 관점으로 봤을 때 오히려 유다는 무책임한 선택을 한 것이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 책임지는 바른 방법은 하나님께 나아가 회개하는 것이다. 그리고 유다가 보여준 이 무책임한 방법이 바로 세상의 방법이다. 세상은 잘못한 일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쫓아내려 하고 더 나아가 자살을 하게 유도한다. 내가 세상에 나가면 간접적으로라도 이런 말을 들을 거 같다. 그때에 내가 기억해야 할 것은 내 목숨 또한 하나님의 것이라는 사실이다. 세상에서 바른 방법으로 자신의 잘못에 책임지고 살아가려면 우리는 항상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저에게 오늘 이 말씀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는 자신의 목숨으로 책임지는 걸 멋있다고 말하는 세상 속에서 책임지는 바른 방법을 항상 기억하고 저의 목숨 또한 주께 있음을 기억하며 살아하는 자가 되게 해 주세요.
유다는 하나님의 자비하심보다 두려움을 더 많이 느끼고 그랬기에 결과가 자결이 나왔던 것 같다. 죄를 지어도 회개하면 용서해주실 수도 있다는 것을 두려움에 앞에 가려 몰랐던 것 같다. 주님의 자비하심을 보는 삶을 살아야 한다. 죄를 지었어도 어떡하지? 용서 안 해주실 것 같은데 하며 시간을 버리다가 죽음을 택하는 것이 아닌 주님 정말 죄송합니다 잘못했습니다. 용서해주세요. 하며 주님의 자비하심을 보고 회개하며 살아가는 내가 되길 소망한다.
항상 우리의 모두의 삶에는 선택이란 것은 있다. 선택이란 것은 앞으로의 나의 미래를 이끌 것이고 현명한 선택을 해야 이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유다는 예수님을 팔아넘기기를 선택했고 노동자에게 3개월 월급 정도 되는 큰 돈을 받았다. 이익을 얻은 것이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유다가 이익을 볼 것을 잘못했다고 하고 유다 역시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 선택이 성경이 말하는 선택과 다른 것 같다. 이 성경이 말하는 선택은 나에게 이익이 오는 선택이 아니라 예수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하라는 것 같다. 죄가 없지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분을 팔아서 얻은 이익이 현명한 선택이 아니라 물론 어려울 순 있겠지만 노력하며 주님의 뜻에 맞는 선택을 해야 한다는 묵상을 오늘 했다.
하나님, 나의 이익을 보는 선택이 아닌 주님의 뜻에 맞는 주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그런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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