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호산나,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상일샘2024.03.13 09:00조회 수 36댓글 7

    • 글자 크기
본문 범위 마가복음 11장 1-11절

1그들이 예루살렘 가까이에, 곧 올리브 산에 있는 벳바게와 베다니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둘을 보내시며,
2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거라. 거기에 들어가서 보면,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새끼 나귀 한 마리가 매여 있을 것이다. 그것을 풀어서 끌고 오너라.
3어느 누가 '왜 이러는 거요?' 하고 물으면 '주님께서 쓰시려고 하십니다. 쓰시고 나면, 지체없이 이리로 돌려보내실 것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4그들은 가서, 새끼 나귀가 바깥 길 쪽으로 나 있는 문에 매여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풀었다.
5거기에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몇 사람이 그들에게 물었다. "새끼 나귀를 풀다니, 무슨 짓이오?"
6제자들은 예수께서 일러주신 대로 그들에게 말하였다. 그러자 그들은 가만히 있었다.
7제자들이 그 새끼 나귀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등에 걸쳐놓으니, 예수께서 그 위에 올라 타셨다.
8많은 사람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다 폈으며, 다른 사람들은 들에서 잎 많은 생나무 가지들을 꺾어다가 길에다 깔았다.
9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10복되다! 다가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더 없이 높은 곳에서, 호산나!"
11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셨다. 그는 거기서 모든 것을 둘러보신 뒤에, 날이 이미 저물었으므로, 열두 제자와 함께 베다니로 나가셨다.

    • 글자 크기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본 사람, 바디매오 (by 상일샘) 화려하지만 아무 열매 없는 성전 (by 상일샘)

댓글 달기

댓글 7
  • 2024.3.13 09:55

    나는 오늘 말씀에서 나귀의 주인의 행동에 집중을 했다. 나귀의 주인은 예수님이 쓰실 작은 새끼 나귀를 가져가는 것을 허락했다.  '주님이 쓰실 것', '주께서 쓰시겠다' 라고 했을때, 군말없이 순종하고 가져가게 했다. 정말 작은, 탄적이 한번도 없는 새끼 나귀, 어쩌면 소중한 것일 수도 있다. 또한 주님을 위하여 쓸 것이 나에게, 사람들이 보기에 좋아보이지 않고, 화려하지 않아도 주님은 그대로 기뻐하시는 분이시다.  여기서 나는 다른 것은 몰라도 주님이 쓰시고, 주님이 원하시는 일에 나의 모든 시간, 나의 모든 소유, 모든 것을 내어드리는 자가 되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주님을 위해 내 짧은 인생, 주님이 보시기에 잘난 모습 없는 내가 주님을 위하여 온 힘과 정성을 다하여 섬기고 싶다. 그럼 어떤 식을 섬길 수 있는가? 주님이 주신 달란트로 주님을 섬길 수가 있다. 또한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면서, 주님의 계획 안에서 주님이 나에게 하라고 하신 것으로 주님을 섬길 수 있을 것 같다.

    주님 어떠한 방법이 되든, 화려하든, 화려하지 않든, 저는 오직 당신만을 섬기길 소망합니다.  주님을 위하여 저의 모든 것을 걸 수있는 마음을 허락해주시고, 제가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만을 섬기게 해주세요.

  • 2024.3.13 10:00

    나는 이 예수님이 나귀를 타고 오셨다는 것을 너무 어려서 부터 알아서 그냥 너무 익숙했지만, 오늘 갑자기 왜 나귀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다.또 다른 하나는  이 말씀 묵상을 중요시해 보라는 목사님의 말씀을 듣고 나서 하나님은 자꾸 의문을 들게 하셔서 더욱 주님의 말씀을 알아가도록 길을 열어주시는 것 같은 느낌이 오늘 들었다.

    이 나귀에 대해서 생각해 볼때 당시 나귀는 정말 천한 동물이었을 것이고 사람으로 치면 종이나 매우 낮은 사람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죽음, 다르게 말하면 죄에 대한 승리를 얻으러 가실 때 그냥 짐이나 들고 일을 못 하면 쓸데없는 그런 동물을 사용해주신다는 것이다. 이게 바로 우리인 것 같다. 정말 비참하고 낮은 우리를 예수님은 찾아오셔서 사용하신다는 것이다. 다시 한번 감사하게 되는 시간이었다.

    하나님, 정말 천하고 천한 저를 사용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바보 같고 그냥 죄악에 물들어버린 저를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말이 아닌 나귀로서 겸손하게 주님께서 주님 오시는 길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저를 잘 가르쳐주시고 함께해주셔서 넘어질 때 다시 일으켜주시고 함께해주세요.

  • 2024.3.13 10:04

    예루살렘에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내가 생각하는 자기 성에 들어가는 왕의 이미지와 너무 다르다. 예수님은 그저 어디서 빌려온 작은 나귀 새끼에 앉아서 그 성문을 지나신다. 십자가로 점점 가까이 가고 계신 예수님은 점점 더 낮아지는 겸손한 모습을 보이신다. 잘못된 겸손의 마음을 주의해야 한다. 나타나는 모양은 여러가지일 수 있다. 보상과 칭찬을 바라는 겸손, 내가 행한 겸손을 다른 사람에게도 요구하려고 하는 모순적인 마음 같은 것들을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나 내가 따라야 할 겸손의 모습은 딱 하나, 예수님이 먼저 보여주신 그 모습이다. 그렇기에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예수님이 어떤 길을 가셨는지, 어떤 모습과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는지를 더 깊이 알고 배울 수 있는 것은 참 감사한 기회라는 것을 느낀다. 오늘도 말씀묵상을 통해 예수님을 닮는 삶이 무엇인지 배웠다. 세상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한 가치가 있는 거룩한 지식이다. 그런 예수님이 보여주신 섬김과 헌신의 모습들이 나의 삶에서도 나타나기를 소망한다. 예수님 하루가 지날수록 더 주님을 사랑하고 닮아가는 자로 성장하게 해주세요.

  • 2024.3.13 10:06

    오늘 이 예루살렘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우리를 로마로 부터 해방하러 오실 줄 착각하고 "호산나(구원해 주소서)를 외친다. 하지만 이들은 이 세상에서 해방을 원할 뿐, 실제 자신에 죄로부터의 해방을 원하진 않는다. 만약 그들이 로마로 부터 자유롭고, 잘 살고 있었을 떄 예수님께서 오신다면, 지금처럼 그들 환영하고, 맞이할 수 있었을까? 이렇게 그들은 자신에 죄도 모른 채 자신에 불편함과 필요를 더 생각한다. 그런데 그건 나도 그런 것 같다 내가 이 세상에 상황이 조금 어렵거나, 무언가를 원할 때면 예수님을 찾으며 그에게 구하지만, 내가 조금이라도 살만해 지고, 얻으면 금세 또 예수님을 잊어버리고 또 죄에 빠져 산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세상 사람들도 이 정도 죄는 모른 척 하고 사는 듯이 나도 그 정돈 괜찮지 않을까 하는 이기적인 생각 또한 있는 것 같다. 하나님 저에 죄의 해방보다, 세상의 해방을 더 원하는 저를 불쌍히 여겨, 저의 죄로부터 구하여 주세요.

  • 2024.3.13 10:18

    9절 '그리고 앞에 서서 가는 사람들과 뒤따르는 사람들이 외쳤다. "호산나!" "복되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예수님이 스가랴의 예언을 성취하시며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많은 사람들이 몰려 예수님을 찬양했다. 그러나 이들은 곧 예수님을 배신하여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을 핍박한다. 나는 오늘 말씀을 이 사람들의 행동을 중심으로 생각해봤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했던 메시아와의 모습이 예수님에게 있지 않아서 예수님을 배신했다. 그리고 이거와 조금 다르나 비슷한 것을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다. 바로 자기 감정에 따라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나에게 더 와닿고 내가 더 묵상했던 부분은 감정에 따른 예배 태도다. 감정에 따라 예배를 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의 감정보다 더 크신 분이기 때문이다. 감정에 따라 예배하게 되면 인간은 여러가지 감정의 문제들을 대면서 하나님 예배하는 것을 피하게 될 것이다. 결국 마음속엔 하나님보다 내 감정이 더 중요하다는 자기중심성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나는 나의 감정에 잘 휩쓸리는 거 같다. 그래서 내 감정이 더 중요하게 느껴져 하나님을 예배하지 않으려 했던 적이 많다. 그런 때에 하나님이 나의 감정보다 크시다. 라는 사실을 들었었다. 오늘 이런 내용으로 말씀을 묵상한 것도 주님께서 내가 다시 이 말씀을 깨닫기 원하신 거 같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저에게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이 묵상을 제가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제가 감정보다 크신 주님을 보고 언제 어느때나 무슨 상황이든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자가 되게 도와주세요.

  • 2024.3.13 12:53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오실 때 말이 아닌 나귀를 타고 오신 이유는 예언을 이루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돌아갈떄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로마에서 구원해줄 것이라 생각하고 호산나라고 외쳤다. 하나님 제가 예수님꼐서 우리 위해 오신 것을 알게 도와주세요.

  • 2024.3.13 13:07

    예수님께 호산나를 외친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있었던 것 같다. 이들이 외친 호산나는 하나님이 바라시는 호산나 하고는 조금 다른 것 같다. 이스라엘은 로마에게 주권을 빼앗긴 상황이고, 메시아가 오셔서 자신들의 비참한 상항에서 구원해 줄거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더 좋은 죄에서의 구원을 하락해 주셨다. 주님께서 바라시는, 우리가 외쳐야 할 호산나는 무엇일까? 우리는 사탄의 속임수에서 구원되기를 외쳐야 한다.

    하나님, 사탄의 속임수의 자꾸 넘어갑니다. 저에게 죄에서의 구원을 허락해 주세요.

첨부 (0)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