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나누기

박해 때문에, 박해 덕분에

상일샘2024.05.16 09:00조회 수 18댓글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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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범위 사도행전(Acts)7:54 - 8:8

54○그들은 이 말을 듣고 격분해서, 스데반에게 이를 갈았다.
55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56그래서 그는 "보십시오, 하늘이 열려 있고, 하나님의 오른쪽에 인자가 서 계신 것이 보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57사람들은 귀를 막고, 큰 소리를 지르고서, 일제히 스데반에게 달려들어,
58그를 성 바깥으로 끌어내서 돌로 쳤다. 증인들은 옷을 벗어서, 사울이라는 청년의 발 앞에 두었다.
59사람들이 스데반을 돌로 칠 때에, 스데반은 "주 예수님, 내 영혼을 받아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었다.
60그리고 무릎을 꿇고서 큰 소리로 "주님, 이 죄를 저 사람들에게 돌리지 마십시오" 하고 외쳤다. 이 말을 하고 스데반은 잠들었다.
1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그 날에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가 일어났다. 그래서 사도들 이외에는 모두 유대 지방과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
2경건한 사람들이 스데반을 장사하고, 그를 생각하여 몹시 통곡하였다.
3그런데 사울은 교회를 없애려고 날뛰었다. 그는 집집마다 찾아 들어가서, 남자나 여자나 가리지 않고 끌어내서, 감옥에 넘겼다.
4○그런데 흩어진 사람들은 두루 돌아다니면서 말씀을 전하였다.
5빌립은 사마리아 성에 내려가서,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선포하였다.
6무리는 빌립이 행하는 표징을 듣고 보면서, 그가 하는 말에 한 마음으로 귀를 기울였다.
7그것은, 귀신들린 많은 사람에게서 악한 귀신들이 큰 소리를 지르면서 나갔고, 많은 중풍병 환자와 지체장애인이 고침을 받았기 때문이다.
8그래서 그 성에는 큰 기쁨이 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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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리아에도 복음이! (by 상일샘) 스데반의 역고발 (by 상일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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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3
  • 2024.5.16 10:00

    우리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가장 큰 것은 바로 나를 꾸미지도, 나타내지도 않으며 그냥 나 자신 그대로 주님께 나아가 믿음으로 그의 사랑 앞에 합당한 모습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모습은 특별한 것이 아닌 우리 모두가 당연하게 가져야 할 모습이다. 나는 오늘 이 순교의 부분을 묵상하면서 "그러면 남은 사람은 어떨까 또 그들은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이 부분을 더 생각하고 싶었다. 오늘 말씀에서 그들이 하는 일은 바로 더욱 복음을 선포하는 것 이였다. 안 미웠을까 만약 나였다면 아마 그렇게 그를 데려가신 하나님도 밉고 또 그를 그렇게까지 핍박한 세상도 미워서 나도 똑같이 혹은 더 크게 죄로 복수 하고 싶은 마음이 들것 같은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걸까? 나는 그 답은 바로 그 행동의 결과를 바라보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이들의 행동의 선택은 어쩌면 복수하고 싶은 이들에게 생명을 전하는 우리의 죄악된 마음으로 받아드리기엔 고통스럽고 하기 싫은 일 처럼 느껴지지만 그 결과로 얻게 되는 것은 주님의 은혜 안에서의 기적과 평화다. 그들도 당시 앞에 있는 상황과 환경보다 이것을 먼저 바라보았기에 그 선택을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고 이 답을 내 삶 속에 적용하자면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내어 드린 예수님의 희생과 사랑을 받은 우리는 그를 버린 우리 인간과 세상이 너무 악하게 느껴져 미워도 예수님을 기다리며 생명을 전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주님 저의 마음은 이기적이고 저의 모든 행동은 결국 죄가 됩니다. 그렇지만 주님 저를 사용하여주세요.

  • 2024.5.16 10:02

    1사울은 스데반이 죽임 당한 것을 마땅하게 여겼다...

    말씀을 읽으면서 사울의 마음을 왜 이렇게 자세하게 기록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 책(사도행전)은 바울의 이야기가 나오기 때문에 바울의 변화를 극적으로 나타내기 위해서 그렇게 쓴 것이다 라는 결론이 나왔다. 주님을 전하다 죽은 스데반의 죽음이 전혀 이상하다 못 느끼는 사울, 죽는 것이 마땅하다 생각하는 그가 결국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열심히 주님을 전하게 되는,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라는 의문이 들게 되는 그런 일은 하나님이 하신 것이고 하나님의 계획이다. 그리스도인들을 죽이기 위해서 누구보다 앞장섰던 그는 180도 달라졌다. 바울의 이야기를 통해 선교, 복음 전하는 일에 더 적극적으로 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스도인을 핍박하던 그가 주님을 믿는데, 그렇게 바꾸시는 이는 하나님이시기에 '내가 주님을 전할때 바뀔 것 같지 않다'라는 이들도 바꾸실 것이다.

    주님 제가 스데반처럼 담대히 주님을 전하게 하시고 저를 사용하셔서 변화되지 않을 것처럼 보이는 이들, 주님을 믿지 않는 가족과 열방이 바울처럼 변화되게 해주세요.

  • 2024.5.16 10:16

    55절 '그런데 스데반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늘을 쳐다보니,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예수께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서 계신 것이 보였다.' 오늘 말씀에서 스데반은 순교했다. 그러나 그는 불쌍하고 억울한 모습보단 기뻐하고 감격에 찬 모습이었다. 나는 이 말씀을 정말 많이 봤다. 그러나 오늘처럼 스데반의 모습이 기쁘고 감격의 찬 모습처럼 보인 건 처음이었다. 내 눈에 그는 항상 안타까웠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나와 과거의 내가 스데반을 다르게 본 이유가 뭘까? 그 이유는 어떤 마음으로 순교를 생각하느냐인 거 같다. 과거의 나는 순교에 대해 나도 모르는 사이 '내가 나를 위해 죽는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거 같다. 그래서 항상 스데반의 죽음이 안타까웠고, 내가 순교한다는 상상을 했을 때 나는 항상 복음을 지키다 죽었지만 사실상 나의 마음은 복음이 아닌 '복음을 지키다 죽는 나'에게 빠져있던 거 같다. 그러다 오늘 스데반의 이 죽음이 안타까운 죽음이 아니라는 것과 글로 보지만 스데반은 이 상황에서 두려움과 억울함이 아닌 기쁨과 감격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이 사실을 깨달을 수 있던 이유는 스데반의 죽음이 나의 어떠함에 있지 않고 모두 하나님께 있었다는 것이다. 오늘 말씀에선 '성령으로 충만함'이 그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 모든 죽음을 주님께서 주관하시지만 순교에 대해선 우리의 믿음만으로 견뎌내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 주님의 은혜로 그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었고, 더 주님을 붙잡아야 한다는 마음이 들었다. 하나님, 오늘 말씀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모든 걸 주관하시는 하나님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저를 봤습니다. 제가 오직 주님만을 더 붙잡고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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